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리 강화 회의 (문단 편집) ==== [[중화민국]] ==== [[중화민국 북양정부]]는 외교 총장 [[루정샹]], 공사 [[구웨이쥔]] 등을 파견하여 명색이나마 승전국의 대열에 합류한 것을 기회로 다른 열강, 특히 일본을 상대로 한 불평등한 대우를 개선하고 또한 산동 지역에 대한 회복을 꾀했으나, 일본도 승전국이었던데다 국력의 차이 때문에 별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고 다른 열강들도 이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회의에서 중국이 얻은 성과는 1세기 가까이 중국을 좀먹던 서구 열강의 [[아편]] 판매를 금지시키는 것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운 결과에 중국 대표단과 중국 당국은 강화조약에 서명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중국 대표단은 서명을 거부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지만 결국 그들도 중국 정부의 명령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뒤늦게 당국에서도 서명을 거부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해당 전문이 너무 늦게 내려와 중국 대표단이 서명장에 가지 못하는 바람에 자동적으로 서명 거부 처리가 되었다. 당시 중국은 [[쑨원]]의 [[호법운동]]의 결과로 북쪽의 [[중화민국 북양정부|북양정부]]와 남쪽의 [[중화민국 호법정부|호법정부]]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이 [[중화민국 호법정부]]의 대표단 격으로 참가한 [[왕징웨이]]는 파리의 중국인 유학생들을 바탕으로 강화조약 서명 저지 운동을 이끌어 중국 당국과 대표단의 서명 거부 결정에 일조했다.[* 물론 왕징웨이 일행이 주도한 서명 저지 운동 하나만으로 중국이 서명을 거부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니고, [[5.4 운동]] 등 여러 정치적 문제로 서명을 미루다 결국 거부까지 가게 된 것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